삼국지 권력자 제갈량과 사마의가 가진 인간적 특징

삼국지 후반부에 접어들면 촉나라와 위나라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된다.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과 위나라의 총사령관 사마의가 지략을 맞대고 패권을 다투면서 그들의 깊은 인간적인 면모가 삼국지에 드러난다.




제갈량의 특징

리스크 최소화

위나라 북벌을 시도할 때 촉에서 위연이 자오곡 계책을 주장한다. 위연이 자신한테 정예 병사 5천 명을 주면 당장 자오곡으로 달려가 신속하게 장안에 도착해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성을 함락시킨다는 계책이었다. 하지만 제갈량이 볼 때 잔도는 너무 길이 험준하고 위험한 데다가 위나라의 매복 병사가 대기하고 있으면 촉의 입장에선 치명타였기에 신중한 제갈량은 그의 계책을 거부한다.

설령 자오곡을 성공적으로 도착해도 장안성 같이 크고 병력이 많은 성은 점령하기 어렵기에 제갈량 성향상 위연의 계책을 거부한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제갈량이 과감한 도박수를 거는 것이 맞지만 사실상 성공 확률은 상당히 희박했다. 위군이 성문을 굳게 닫고 높은 성벽에서 화살만 쏴도 시간은 위나라 편이었기에 촉군은 식량난에 허덕이고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군령 준수

제갈량이 난세에서 자신의 군대를 통제하기 위해 지켰던 방법 중 하나이다. 사사로운 정에 휘말려 장수든 병사든 실수하는 것을 너그럽게 넘어가 주기보다 약속했던 군령에 대해서는 칼같이 지켰던 스타일이다. 첫 북벌 정벌 때 마속이 가정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여기서 산 위로 군대를 옮기고 수로가 차단당해 위군에 대패당하자 마속을 울면서 베게 된다. 

삼국지 시절 전란스러운 상황에서 제갈량은 군대 내에 기강이 잡혀야 군사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만약 여기서 제갈량이 마속을 살려두었더라면 촉군의 질서가 어지러워지고 기강이 무너져서 북벌을 할 때 내부 단결이 어려울지도 몰랐다.



청렴 검소

촉한의 승상이었던 제갈량이 청렴 검소했다는 사실은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한 나라의 거의 가장 높은 직책이라면 보통의 사람일 경우 부귀영화를 꿈꾼다. 물론 제갈량도 높은 직책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래도 일반 사람과 차이점이 있다면 위험한 북벌을 감수하면서 조금도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한실을 일으키기 위한 것에만 집중했다. 

실제 제갈량의 사후 뽕나무와 척박한 땅이 드러났으나 촉의 최고 지위 승상에 비하면 굉장히 검소한 편이었다. 이토록 그는 사적인 재산을 모으기 보다 선제 유비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위해 한 왕실을 다시 일으킬 마음이 가장 컸었다.



사마의의 특징

인내심

어떻게 보면 100년이라는 긴 삼국지 역사 동안 인내심의 끝판왕이라 볼 수 있는 인물이 사마의일 수도 있다. 위나라와 촉나라의 대결 중 제갈량이 여인의 옷을 보내어 사마의를 자극했는데 여기에 분하지 않고 끝까지 감정을 통제해 시간을 끌었으며 제갈량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게다가 자신의 야망을 숨기고 권력을 키워 위나라를 빼앗고 진나라를 세운 점도 역시 사마의가 인내심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자신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주변에 알리지 않는 그런 포부는 삼국지 통틀어서 최강이라고 볼 수 있다.



속전속결

사마의가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속전속결이다. 맹달이 반란을 일으키려 하자 사마의는 맹달이 대비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빠르게 군대를 전진시킨다. 군사를 빨리 전진시키면 군대가 지치기도 하는데 반대로 수성하는 입장에서 허를 찌를 수 있어서 허무히 점령당할 수도 있다. 사마의는 맹달의 특성을 파악하고 전군을 빠르게 진군시켜 상용의 맹달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런 사마의의 속전속결적 전술은 이후 고평릉 사변에서도 이어지고 그의 계책이 완벽히 통하면서 진나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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